삶과 하나님에 대한 탐험
삶과 하나님에 대한 탐험

진정한 삶

_여러 명의 저자들

당신은 이게 끝이 아니라고 느껴본 적이 있나요?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고 느껴본 적이 있나요? 아래의 글들은 진정한 삶과 그 속의 신(하나님)의 역할에 관한 솔직한 이야기 입니다.

진정한 삶 : 성취 [글쓴이 John G.]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꿈은 매우 높은 산을 오르는 것이었습니다. 마침내 정상에 올랐을 때, 그는 매우 실망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에게는 더 이상 오를 곳이 없었고 그의 삶은 아직도 공허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마치 골프선수가 1등 상금을 탄 후에 오히려 성적이 부진한 것과도 같습니다.

저의 대학 생활은 이와 비슷했습니다. 제가 4학년이 되었을 때, 저는 사람들이 권했던 모든 일을 이뤘습니다. 친목회나 학교 조직에도 참여했고 파티를 즐겼습니다. 성적도 괜찮았고 제가 관심 있는 여자들과 데이트도 했습니다.

제가 대학 생활에서 원하고 성취하고 싶었던 모든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산의 정상”을 밟았음에도 불구하고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여전히 무언가 부족했지만 저에게는 더 이상 목표가 없었습니다.

그 누구도 제가 삶에 대해서 이렇게 느끼고 있는지 몰랐습니다. 저는 이런 상태를 밖으로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놀랍게도 어떤 이들은 자신들의 삶이 저와 같기를 바라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제가 전혀 성취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학교에는 조금 독특한 그룹이 있었는데 저는 그들을 “성경꾼”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자주 놀리며 비꼬곤 했는데 왜냐하면 그들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는 공허한 느낌이 전혀 없었고 오히려 제가 그토록 찾았던 진정한 성취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들은 삶의 의미를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마지막 학기가 끝난 여름 방학에 저는 교회에서 하는 성경 공부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어떤 이유에서 였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 곳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평소보다 영적으로 열려있는 상태였던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 성경을 가르치기 시작하였는데 이전에 들어본 적이 있는 성경 구절이었지만 전혀 다르게 들렸고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저는 성경이 얼마나 진실하고 또 나의 삶과 깊은 연관성을 지니고 있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마치 신(하나님)이 제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있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당장 그가 들어오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저는 앞으로 저의 삶이 어떻게 변할 것인가에 대해서, 또 친구들이 저를 이상하게 생각할 것에 대해서 계속해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생각하면 할수록 신(하나님)은 자신과의 관계를 시작하는 것이 옳은 일임을 깨닫게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진심으로 그가 제 삶에 들어올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 다음에 일어난 일은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렇게 이야기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저는 신(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비로소 진정한 성취의 근원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전까지는 채워지지 않았던 마음의 빈 부분이 온전히 채워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이 온전함은 그 날 이후 제 삶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저는 저의 경험이 그다지 놀랄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예수가 누구에게나 권하고(말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내게로 오는 사람은 결코 주리지 않을 것이요, 나를 믿는 사람은 다시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1 예수는 우리에게 자신과 관계 맺을 것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삶에는 여전히 오르막 내리막이 있고 실망과 갈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아는 경험은 삶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했고 진정한 성취를 주었습니다.

진정한 삶 : 수용 [글쓴이 Robert C.]

저는 어렸을 때 TV 만화영화 <오즈의 마법사>를 무척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아마 당신도 그 내용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갑자기 불어온 토네이도에 휩쓸린 도로시는 오즈라는 곳에 도착하면서 횡포를 부리던 마녀를 죽이게 되고 마을 사람들의 친절한 대우와 존경을 받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로시는 그저 집에 돌아가고 싶어했고 마을 사람들은 오즈의 마법사를 찾아 갈 것을 권했습니다. 그래서 도로시는 길을 떠났고 도중에 세 명의 친구들과 만나 오즈의 마법사를 찾는 여행을 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들의 소원을 들어줄 위대한 존재를 만난다는 즐거운 기대가 자라났습니다.

그 다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도로시와 친구들이 만난 것은 소원을 들어주는 친절하고 마법사가 아니라 무서운 목소리로 불가능한 일을 요구하는 마법사였습니다. 그는 사악한 마녀의 빗자루를 가져오라는 무리한 요구를 합니다.

결국 도로시와 친구들은 마녀의 빗자루를 가지고 오즈의 마법사 앞에 다시 서게 됩니다. 그런데 그때, 도로시의 강아지 토토가 커튼을 끌어내리자 커튼 뒤에 있던 것은 무서운 마법사가 아닌 친절하고 나이가 많은 할아버지였습니다.

어렸을 적 저에게 있어 신(하나님)은 오즈의 마법사와 같았습니다. 저는 신(하나님)은 성급하고 무서운 성격에다가 저에 대해서는 잘 모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교회에서 본 신(하나님)의 이미지 역시 잘 와 닿지 않았고 마치 다른 세상에 살고 있어 다가갈 수 없는 존재처럼 보였습니다. 저는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은 것은 굉장한 희생이지만 그것은 그가 어쩔 수 없이 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기준을 잘 지키며 올바르게 행동하는 것이야말로 그가 원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그에게 인정받기 위해서는 나 자신이 가치 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야만 했습니다. 저에게 있어 신(하나님)은 위대한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던 중 대학교 1학년 때 모든 것이 변했습니다. 드디어 커튼을 끌어내리게 된 것입니다. 난생 처음으로 어떤 사람이 성경을 보여주며 신(하나님)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신(하나님)은 제가 생각했던 것만큼 무섭고 심술궂은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정반대로 사랑과 동정이 많은 존재였습니다. 그는 제가 저의 힘으로는 완벽한 삶을 살아가는 것도, 그의 기준을 지키는 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완벽한 사람이 되어 저를 위해 그 기준들을 직접 지켜 보임으로써 위대한 사랑을 나타냈습니다.

제가 배운 바에 의하면, 예수의 십자가는 제가 따라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저를 대신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의 고통을 흉내내지 않고서도 그 유익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음으로써 저의 죄와 실패들은 이미 심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통해 신(하나님)은 저에 대한 그의 사랑을 보여주었습니다. 십자가에서 그는 자신이 얼마나 저를 잘 알고 있는지를 보여주었고 저를 받아주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듯, “하나님께서는 죄를 모르시는 분에게 우리 대신으로 죄를 씌우셨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2

제가 발견한 진정한 수용은 커튼 뒤의 새로운 이에게 있었습니다. 저는 당신도 커튼을 끌어내리고 그를 발견하여 그의 수용과 용서에 대해 생각해 보기를 도전합니다.

진정한 삶 : 목적 [글쓴이 Marilyn A.]

저는 삶이란 항상 의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매 순간이 그럴 필요는 없겠지요. 가령 빨래를 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삶이란 또한 늘 심각한 것이 좋은 것만도 아닙니다. 우리는 많은 시간을 즐겁게 보낼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삶이란 즐거움을 찾는 것 그 이상이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즐거움은 오래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즐거움은 잠시일 뿐 곧 없어지고 맙니다. 작가인 래비 재커라이어스(Ravi Zacharias)는 “만약 삶에 더 큰 의미가 없다면, 삶이란 어떠한 동기나 본질도 없으며 설명할 수도 없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몇 년 동안 삶의 목적을 찾기 위해 도스토예프스키, 사르트르, 니체, 소크라테스 등의 철학을 공부했습니다. 몇 주마다 새로운 철학을 시도하였지만 이러한 철학들을 현실의 삶에 적용하면 할수록 돌아오는 것은 실망 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저의 탐색은 계속되었습니다.

잡지 타임즈의 국제부 통신원, 데이빗 에이크먼 박사(Dr. David Aikman)는 이 주제에 대해 영감을 주었습니다. 그는 여러 대학원의 학위를 가지고 있고, 러시아와 중국 역사, 공산주의 전문가로서 30개가 넘는 나라에서 근무를 했습니다. 또한 그는 6개 국어에 능통하며 무엇보다 삶의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에이크먼 박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각 사람에게는 살아가는 목적과 존재하는 이유가 있다. 어느 누구도 그것에 대해 이야기해 줄 수 없겠지만 당신은 하나님으로부터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그러면서 그는 예수와의 관계를 시작할 것을 추천했습니다.

에이크먼 박사는 한 이야기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제가 성경에서 예수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마치 예수가 제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진정한 삶으로 가는 길이다. 네가 내 말을 믿고 따른다면 네 삶은 변할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그렇게 그는 예수를 자신의 삶에 초대함으로써 예수와의 관계를 시작하는 첫 발을 띄게 되었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당신에게 약속할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에게 나아간다면 즐거운 인생을 살게 될 것입니다.”

에이크먼 박사처럼, 저 역시 무신론자였음에도 예수가 자기 자신에 대해 말한 것들이 독특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예수가 사람들에게 보인 것은 자신의 삶에 대한 철학이 아니라 자기 자체였습니다. 예수는 자신이 우리의 죄를 용서할 수 있고 우리가 힘든 상황에서도 내면의 평안을 주며 자유로운 삶으로 인도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만약 신(하나님)이 정말 존재한다면 그에 대해서 알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여전히 의심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아는 기독교인들과 논쟁을 했습니다. 저는 예수가 신(하나님)이라는 증거를 원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신(하나님)의 존재와 예수의 신성에 관한 증거를 정확하게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정말 많은 논리적·역사적 사실들을 발견하고는 충격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결정을 내려야만 했습니다. 예수를 내 인생에 초대하고 그가 원하는 대로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인생에서 신(하나님)의 존재의 가능성의 영역을 거부할 것인가?

예수를 믿어야 할 구체적이고 지적인 이유들을 검토한 뒤 저는 예수가 제 인생에 들어와 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날, 삶에 목적에 대한 저의 탐색은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저는 제가 신(하나님)과 관계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습니다. 저는 예수에게 저의 이야기를 나누었고 예수는 다양한 상황들을 통해 자신이 제 이야기를 듣고 있다는 것을 나타냈습니다. 예수는 저의 직업을 제가 꿈꾸던 것보다 더 크고 재미있게 인도했습니다. 저는 예수에게 질문했고 그는 성경을 통해 도움이 되는 적절한 대답을 해 주었습니다.

이런 일들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신(하나님)과의 관계는 진정한 양방향 관계였고 이것은 매우 즐거운 일이었기 때문에 저는 이 관계를 지금까지도 꾸준히 유지하고 있습니다. 제가 성인(聖人)이어서가 아니라 예수는 진심으로 자신을 알고 따르기 원하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그의 인생에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따르는 것은 정말 즐거운 일입니다. 그 무엇보다도 그 누구보다도 예수를 아는 것은 저의 삶에 진정한 목적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진정한 삶 : 예수

진정한 삶이란 성취감과 수용 그리고 목적이 있는 삶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것들을 예수와의 관계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인간 역사상 그 누구도 예수가 대단한 증거를 만들어 자신의 말을 뒷받침하려 했다는 주장을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는 자신이 신(하나님)이라고 주장했고 우리의 죄를 용서할 수 있다고 했으며, 자신만이 신(하나님)을 알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주장들에 대해 죽었다가 부활함으로써 뒷받침했습니다. 예수는 그 어떤 위대한 성인(聖人)들과 비교할 수 없는 가장 특별한 존재입니다.

성경에는 예수가 신(하나님)이며 사람이 되었다고 쓰여 있습니다. “그 말씀은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3 그는 “하나님의 본체 그대로의 모습이십니다.”4 간단히 말해서 예수는 신(하나님)이 어떤 존재인가를 그대로 드러낸 것입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예수와의 관계를 시작할 수 있을까요?

신(하나님)과의 관계는 우리가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고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신(하나님)의 인정을 얻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것은 그가 바라는 방법이 아닙니다. 당신은 누군가와의 관계에 있어 인정받기 위해 노력했던 적이 있습니까? 이런 관계에는 즐거움이란 없습니다.

신(하나님)은 우리를 진심으로 사랑해서 우리가 그에게 가까이 갈 수 있는 방법으로 자기 자신을 내어 놓았습니다. 하지만 우리와 신(하나님) 사이를 가로막는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우리의 죄(분노, 상처주는 말, 성급함, 이기주의, 욕심 등 자기중심적인 면을 나타내는 것들)입니다. 만약 당신의 기도를 듣지 않는 것 같다고 느껴진다면, 죄가 그 원인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죄가 신(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려 놓았습니다.

그렇다면 신(하나님)은 우리와 친밀한 관계를 가지기 위해서 무엇을 했을까요? 예수가 우리의 죄를 자신의 어깨에 지고 기꺼이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예수가 이렇게 한 것은 우리가 완전히 용서받고 그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범죄로 고소를 당한 대학생이 있었습니다. 판사는 그녀에게 30일 동안 감옥에 있거나 백만 원을 내라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감옥에 갇혀 있을 수도, 돈을 낼 능력도 없었습니다. 이것을 알게 된 판사는 판사복을 벗고 내려와서 벌금을 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정직한 판사로서 그는 범죄를 그냥 눈감아 줄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녀의 아버지이기 때문에 그녀를 대신해서 벌금을 내기로 선택한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가 십자가에서 우리 각자에게 한 일입니다. 예수는 채찍을 맞고 굴욕을 당하고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형을 받는 위대한 희생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 자신의 희생에 응답하여 자신을 우리의 삶에 초대할 것을 바라고 있습니다.

진정한 삶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예수는 우리가 그를 알고 그의 사랑과 기쁨 그리고 평화를 경험하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우리 삶에 초대할 때 우리는 그의 용서를 받고 예수와의 영원한 관계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예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보아라, 내가 문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와 함께 먹고, 그는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5

만약 당신이 이것을 원한다면 지금 이 기도를 따라 해 보십시오. (그러나 말보다는 마음의 자세가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 저의 죄를 고백합니다. 저의 모든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니 감사합니다. 저의 죄를 용서해주세요. 그리고 저는 당신과의 관계를 시작하고 싶습니다. 제 인생의 주인으로 와 주셔서 진정한 삶을 살아가도록 해주세요.”

의미 있는 삶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근원 또는 이 사이트의 다른 글을 읽어보십시오.

 예수님을 제 삶에 초대했습니다. (더 도움될 내용을 첨부합니다…)
 예수님을 제 삶에 초대하고 싶습니다, 이것에 대해 더 알려주세요…
 질문있습니다…

성경에서…

“그 아들을 모신 사람은 생명을 가진 사람이고, 하나님의 아들을 모시지 않은 사람은 생명을 가지지 못한 사람입니다.”
(요한일서 5:12, 표준새번역)

“그를 맞아들인 사람들, 곧 그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다.”
(요한복음 1:12, 표준새번역)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그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을 것이다.”
(요한복음 3:16, 표준새번역)

“여러분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구원이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님은, 아무도 그것을 자랑할 수 없게 하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8-9, 표준새번역)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 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 것이 되었습니다.”
(고린도후서 5:17, 표준새번역)

“영생은 오직 한 분이신 참 하나님을 알고 또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7:3, 표준새번역)

(1) 요한복음 6:35 (표준새번역)
(2) 고린도후서 5:21 (표준새번역)
(3) 요한복음 1:14 (표준새번역)
(4) 히브리서 1:3 (표준새번역)
(5) 요한계시록 3:20 (표준새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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