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데카르트는 자신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다음과 같은 논리로 증명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그는 “나의 상상으로 내가 존재한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는 “나”라는 주어를 덧붙임으로써 자신이 스스로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했다. 인간의 자아는 세상에서 가장 난해한 문제 중 하나이다. 자아는 우리를 초라하게 하고 또한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분리된 개인이라는 생각에 휩싸이게 한다. 우리는 외딴섬 같을 때가 있다. 어느 누구도 당신의 기분과 생각을 알 수 없다. 그것은 온전히 당신의 것이며 당신의 부분이기도 하다.
우리(자아)는 신(하나님)과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데 있어 중요한 것을 속이곤 하는데 그것을 ‘의지’라고 한다. 그 의지야말로 우리의 일부이며 진정한 모습이다. 우리의 삶을 왕좌가 놓인 방이라고 가정해보자. 그리고 우리 자신이 그 왕좌에 앉아있다. 세상의 좋은 것들이 우리의 관심을 끌 때 우리는 그것에 흔쾌히 다가간다. 우리에겐 선택권이 있기 때문이다. 그 방은 내가 왕좌에 올라가 있는 나만의 세상이기 때문에 내 선택으로 모든 것이 결정된다.
우리가 왕좌에 앉아있는 동안 이 세상에 대한 다른 정보가 들어오기도 한다. “친애하는 왕이시여, 제 생각에 당신이 파이조각을 세 개 째 드시게 된다면 큰 고통을 당하실 것 같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마음이 하는 말이라고 할 때, 우리는 그것을 무시할 수도 있고 수긍할 수도 있다. “나에게서 물러나라, 이 바보같은 것”이라고 자아가 말한다. “만찬이 끝나고 조금 걷는다면 괜찮을 것이다”.
이 개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을 어떻게 대하는가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삶에 어떠한 시점에서, 우리의 양심은 지금까지 우리가 가지고 있지 않았던 신(하나님)에 관한 정보를 가져온다. 그것은 아마도 다음과 같을 것이다.
“친애하는 왕이시여, 하나님이라고 하는 누군가가 당신의 세상으로 통하는 출입구를 찾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말하기를, 하나님은 하나님이 가고자 하는 길은 어디든지 갈 수 있는 지배권을 갖고 있지만, 당신의 초대가 있기 전에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하나님이 당신의 삶에 들어 온다면, 당신이 왕좌 위에서 내리는 결정에 아주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당신이 언짢더라도 그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당신의 세상에 들어온다면 그 세상은 더 좋게 변할 것이라고 한다. 그는 당신을 아주 많이 사랑하고, 당신에게 진짜로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어한다.
그가 당신과는 달리 완벽한 왕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라. 하나님을 믿는 것이 당신 스스로를 믿는 것보다 낫다. 그렇다면 이제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하나님이 당신의 삶에 들어오도록 그를 받아들이겠는가?
우리는 모두 이와 비슷한 경험이 있지 않은가? 하나님은 우리가 스스로 결정을 내리도록 한다. 이를 통해 그가 우리를 얼마나 존엄하게 대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는 우리의 세상을 그냥 뚫고 들어오지 않는다. 그 대신 하나님은 우리 삶 안에 들어가도 되는지 물어본다. 예수는 이렇게 말했다. “보아라, 내가 문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와 함께 먹고, 그는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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